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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호미니드 데니소바인




 2008 년, 러시아의 고인류학자들은 알타이 산 (Mt. Altai) 에 있는 데니소바 (Denisova) 동굴에서 오래된 호미니드의 것으로 보이는 새끼손가락의 파편을 비롯한 작은 뼈 부스러기를 발견했습니다. 알타이 산은 중앙 아시아에 가까운 위치에 있는 산인데 여기 있는 데니소바 동굴에는 초기 인류 (즉 호모 사피엔스) 와 네안데르탈인 (호모 네안데르탈시스) 가 살았던 흔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발견된 작은 뼈 파편들은 이들 중 어느 종에도 속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견된 뼈 파편의 레플리카. 이 작은 화석 하나가 인류 진화에 대해서 엄청난 비밀을 알려 주었습니다.  This is a replica of the finger bone fragment of a Denisovan hominin on a human hand. (Credit: MPI for Evolutionary Anthropology) )


 이 뼈는 청소년기에 있는 여자의 것으로 밝혀졌는데 더 중요한 사실은 여기에 보존된 DNA 로 부터 얻어졌습니다. 이 동굴은 거의 섭씨 0 도 정도의 추운 온도에서 장기간 뼈를 보존하면서 그 안에 있는 DNA 의 상당수를 4만년이라는 시간 (같은 층에 뭍힌 유물로 부터 추정한 연대) 동안 기적적으로 보존했습니다. 물론 모든 DNA를 다 복원한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 DNA 는 인류에 대한 기존에 인식을 바꿀 만큼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DNA 는 화석화된 뼈와는 달리 엄청난 양의 정보를 담고 있지만 매우 큰 나선 모양의 분자로 생명체가 죽고 난 이후에는 쉽게 분해되기 때문에 이를 확보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따라서 이 작은 뼈들에서 DNA 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복권에 당첨되는 수준의 행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분석한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요하네스 크라우스 (Johannes Krause) 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미토콘드리아 DNA (mt DNA) 를 일부 복원하는데 성공해서 그 결과를 2010 년 네이처에 보고했습니다. 세포내 소기관인 미토콘트리아는 그 자체로 DNA 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미토콘드리아가 오래전에는 독립적인 박테리아였다는 증거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미토콘드리아는 어머니에게서만 물려받기 때문에 진화 및 유전 연구에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즉 아버지에게서는 mtDNA 를 물려받지 않으며 어머니에게서만 mtDNA 를 받기 때문에 실제 어떤 경로로 인구 집단이 유지되고 확산되었는지를 추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또 분자 시계등으로 활용이 가능합니다.


 이 때 분석된 mtDNA 염기 16500 개를 조사한 결과 현대 인과 이 데니소바인과 현대인의 차이는 385 염기 (bases) 였습니다. 반면 네안데르탈인과 현대인의 차이는 202 개 정도였고 침팬치와의 차이는 1462 개였습니다. 일반적으로 mtDNA 의 차이는 진화적으로 계통이 갈라질 수록 커지기 때문에 이를 일종의 분자시계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를 감안했을 때 아마도 데니소바인은 호모 에렉투스에서 진화된 인류의 형제뻘 되는 사람과 (hominidae) 의 생물로 호모 사피엔스의 조상과는 대략 70 만년 이전에 갈라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생 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나 유라시아 대륙으로 퍼지기 훨씬 전에 호모 에렉투스는 유라시아 대륙으로 퍼져나갔고 데니소바 인은 이들의 후손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X woman 이라고 명명된 데니소바 인의 작은 뼈 파편이 발견된 데니소바 동굴  http://en.wikipedia.org/wiki/File:Turist_den-peschera.jpg ) 


 하지만 진짜 중요한 이야기는 여기서 부터입니다. 현생인류의 DNA 에 대해서는 상당한 수준으로 분석되어 있습니다. 데니소바 인의 DNA 는 작은 손뼈 파편과 치아 몇개에서 추출한 것이 전부지만 그럼에도 여기에는 DNA 가 아니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중요한 정보가 담겨있었습니다. 


 그것은 이들이 생존했을 당시 수만년전에 아프리카에서 발생해서 유라시아대륙으로 퍼저나가던 현생 인류와 중앙아시아에서 접촉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 이들은 인류의 조상과 이종 교배를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인류와는 다른 종으로 분류가 가능한 수준으로 차이가 있어도 이종 교배는 가능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즉 호모 사피엔스와 데니소바인은 2세를 만들 수 있었고 이 2세는 다시 후손을 남길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엄격한 종의 구분이라는 관점에서보면 혼란스런 이야기 이지만 실제로 일반적으로 다른 종으로 구별되는 근연종들 사이에서는 생식능력이 있거나 혹은 없는 2세가 태어날 수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미 북극곰과 회색곰의 이종 교배종에 대한 내용에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종의 분리는 유전자 집단의 오랜 격리를 통해 일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아직 100% 분리가 이루어지지 않아 일반적으로는 별개 종으로 인식되고 실제 자연계에서 종간교배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 종이라도 실제로는 이종 교배가 가능한 경우가 있으며 완전한 분리가 되기 전까지 서로 유전자를 조금씩 주고 받는 경우가 있다는 점은 최근 잘 입증되고 있습니다. (사실 종간 교배는 품종 개량의 목적으로 인간이 인위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 자연적으로도 이런 잡종이 발생했고 이것이 생명 진화에 여러가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 여기에서 언급하는 내용입니다) 


 만약 두 종을 가로 막았던 지리적 환경적 장벽이 제거되고 종간 교배가 매우 빈번하게 이루어지면 결국 다시 하나의 종으로 합쳐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종교배가 가능은 해도 드물게 일어나면 결국 오랜 시간이 지나면 생식력이 있는 2세를 만들 수 없을 만큼 차이가 커져 완전한 종분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이종 교배의 흔적은 그들의 DNA 에 남게 됩니다.  


 최근 연구 결과는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호모 사피엔스가 완전한 종분리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연구팀의 공저자인 막스 플랑크 진화 인류학 연구소 ( Max Planck Institute for Evolutionary Anthropology ) 스반테 파보 ( Svante Paabo) 는 작은 뼈와 치아로 부터  mtDNA 가 아닌 DNA 의 상당 부분을 복원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는 새로운 DNA 복원 기술 덕분에 가능했던 것으로 DNA 를 통한 진화 연구의 신기원을 이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 내용을 2012 년 사이언스 지에 보고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보면 아마도 현대의 멜라네시아인 DNA 의 일부는 바로 데니소바인에게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현대 일부 갈색곰 (Grizzly bear) 의 DNA 의 일부가 북극곰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이는 것과 유사합니다. 멜라네시아 인의 조상은 데니소바 인이 멸종되기 전에 이들과 조우했으며 이종 교배를 통해 DNA 에 이 사실을 숨기고 동진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멜라네시아 인 이외에도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지역 일부 인종들에서 데니소바 호미니드에서 기원한 것으로 생각되는 DNA 의 일부가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현생 인류의 충격적인 출생의 비밀 (?) 은 이제 막 연구되기 시작한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최근의 연구에서는 과거에는 가능성이 떨어졌던 것으로 생각되던 네안데르탈 인과 현생 인류와의 이종 교배 역시 새롭게 연구 중에 있습니다. (이 부분은 앞으로 언급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흘러든 DNA 는 현생인류가 짧은 시간동안 상당한 다양성을 획득하는데 기여했을 것으로 생각되며 인류 진화가 이전에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복잡하게 진행되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네안데르탈인의 DNA 복원 계획과 더불어 상당량이 복원된 데니소바인과 현생 인류 집단과의 DNA 의 비교 연구는 앞으로 인류 진화에 대해서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것으로 보여 학계의 매우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참고  


Krause, Johannes; Fu, Qiaomei; Good, Jeffrey M.; Viola, Bence; Shunkov, Michael V.; Derevianko, Anatoli P. & Paabo, Svante (2010), "The complete mitochondrial DNA genome of an unknown hominin from southern Siberia", Nature 464 (7290): 894–897,doi:10.1038/nature08976PMID 20336068
   
Matthias Meyer, Martin Kircher, Marie-Theres Gansauge, Heng Li, Fernando Racimo, Swapan Mallick, Joshua G. Schraiber, Flora Jay, Kay Prufer, Cesare de Filippo, Peter H. Sudmant, Can Alkan, Qiaomei Fu, Ron Do, Nadin Rohland, Arti Tandon, Michael Siebauer, Richard E. Green, Katarzyna Bryc, Adrian W. Briggs, Udo Stenzel, Jesse Dabney, Jay Shendure, Jacob Kitzman, Michael F. Hammer, Michael V. Shunkov, Anatoli P. Derevianko, Nick Patterson, Aida M. Andres, Evan E. Eichler, Montgomery Slatkin, David Reich, Janet Kelso, and Svante Paabo. A High-Coverage Genome Sequence from an Archaic Denisovan Individual. Science, 30 August 2012 DOI: 10.1126/science.1224344

Laurent Abi-Rached, et. al. (2011-08-25). "The Shaping of Modern Human Immune Systems by Multiregional Admixture with Archaic Humans". Science 334 (6052). doi:10.1126/science.1209202. PMID 21868630.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Aug 2011. Lay 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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